이 글을 임시저장하고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여기까지 왔다. 미완이더라도 먼저 저장을 하고싶다. 그래야 부족한걸 보고 얼른 고쳐 쓸거 같기도 하고 더이상 미루면 영영 못 쓸거 같아서..                 

최대한 빨리 쓰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세월호가 침몰한지 정확히 삼백일하고도 65일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까지 확실히 침몰의 원인을 장담 할 수 없고 또한 생존자 구조나 해운 비리조사 등의 수많은 의문점들을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과연 이 상황에선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개인적으로 세월호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관심뿐만 아니라 관련도 많다. 

1년전 아침 8시 반쯤 학교 교실에서 한 친구가 소리쳤다. "야 세월호 침몰중이래"



 2013년 비슷한 시기에 수학여행을 위해 탔었던 세월호. 그 배의 소식을 매스컴, 포털사이트 메인에서 보게 되니 친구들의 관심이 컸다. "큰일 났다" 거나 장난식의 "우리 늦게 갔으면 큰일날뻔 했어" 등의 시시콜콜한 말이 오갔다. 수업시간에도 수업이 진행이 되질 않아 선생님들 또한 뉴스를 켜주셨다.

난 정확히 기억한다. 네이버 메인에 (속보)세월호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중. 라고 쓰여있던 글을.

그리고 얼마 안되서 기사가 몇개씩 더 올라더니 전원 구조라는 기사가 올라왔다.(희대의 오보였지만..) 그 후 선생님, 친구들의 안도와 함께 관심이 조금 사라졌다. 하지만 전원구조와 함께 밑에 또 다른 기사가 있었기 때문에 난 믿지않았다. 한 30%정도만 신뢰했다. .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승객 전원 구조 된 듯." 기사제목이 나의 머리에서 잊혀지질 않는다. 

 평소의 대한민국을 살짝 틀어보는 나에게 '듯' 이라는 끝 마무리는 불안감을 주고 신뢰성이 떨어져 보였다. 나의 예감은 슬프게도 틀리지 않았다.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기사가 올라왔다. 300여명 구조 170여명 실종. 기사를 보고 '역시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때 솔직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많이 구조했다고.. 170여명에게 애도를 표하지만 300명의 목숨 건져 올렸기 때문에..           이 기사를 본 뒤로 다른친구들과 다를 것 없이 수업을 듣고 간간히 스마트폰을 보았다. 얼마후 정정된 기사에는 구조자가 168명정도 밖에 있질 않았다. 충격적이였다. 알수 없는 공포와 슬픔, 분노가 날 휘감았다. 같은 배를 탔던 동질감 혹은 같은 대한한국 고등학생이라는 이유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날 너무나 슬펐다.  

참사 일어난 지 어느새 1년이 흘러버렸다. 과연 우리는 나는 내 친구들은 어떤  

식당칸에서 생존자 신호가 있다고 했었다. 전문가라는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ㅁㅣ완성...(2019.10.10 추가)


위의 줄을 그은 부분은 무슨 내용을 쓰려했는지 잘 생각이 안난다...

먼저 식당칸 얘기를 해볼까...

어떠한 경로를 통하여 전파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식당칸에 생존자 신호가 있다는 정보가 나왔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식당칸 쪽으로 구조인력을 배치한다고 하였고 구조가 원활하게 진행 되었는지는 알 수없지만 어쨋든 구조활동이 이루어졌을거다. 

난 이것을 실패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식당칸은 벽면이 대부분 유리로 되어있으면 에어포켓이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희박한 






이 날 집회를 참여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이 작은 피켓을 들고 거리행진을 했다.

대학생 추모행진에서는 경찰이 같이 동행하여 안전하게 행진을 진행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물론 

여기에도 사복 경찰은 있었다. 내생각이지만 일부러 경찰이라고 티 낼려고 하는거 같다. 

누가 봐도 경찰이다.   

청계광장에서 선언을 한 뒤에 촛불문화제에 가려고 서울 시청으로 이동중이다.







시청에서 대열을 정리하면서 이동중일때 한 유가족 어머니께서 우리들을 보며 활짝 웃으며 "고마워 학생들"이라고 해주셨다. 난 정말 이때 울컥했었다. 솔직히 조금 울었다. 

 난 세월호 사건을 접하고 관련된 많은 행사에 참여한만큼 그 순간 순간 많이 울었다.  표현이 좀 적절지 않지만 웬만하면 울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말을 듣고는 정말 슬펐다. 

저 어머니께서는 자식을 잃고 현재의 상황에 절망하며 얼마나 슬퍼하셨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보며 웃으며 힘내라 하는 모습은 나로서는 예측 할 수 없는 슬픔이었고 또 그들의 강인함에 감동한 눈물일지도 모르겠다.  





이승환씨를 비롯한 여러 가수,밴드들이 추모곡을 불러주었다. 옆쪽에 호텔이? 있었는데 창문너머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통행을 제한하는 이 플라스틱?은 시청광장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도로로 밀려나오는것을 위해 조금씩 설치되어 있었는데 금방 이렇게 누워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야광 플라스틱은 처음봤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색감이 정말 이쁘다. 하나 가지고 가고 싶었다. 



문제의 장면이다. 이 날 집회가 불법이니 폭동이니 등등 여러말이 있었다. 이장면은 시청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길을 차벽으로 막고 시민들이 길을 열어달라는 장면이다. 

정말 객관적인 시각으로(물론 내가 빨갱이라서 조금 편향적이지만) 이해가 되지는 않는 부분이었다. 아마  이 길을 열어주었으면 일찍 해산 됐을지도 모른다. 앞쪽에 있는 사람들은 시민들과 운동권 사람들이다. 하지만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시청에서 추모제를 본 후 광화문에 있는 분향소에 국화 한 송이를 두고 가려는 선량한 시민이었다. 정말로 꽃 한송이를 두고 가지 못해 이런 일이 발생했다. 






이 사진들은 종각에서 대치하던 상황이다. 상황의 본질은 같다. 분향소를 가려는 것 뿐이다. 다르다면 차벽으로 막힌 곳을 우회하여 온 것만 다르다. 유가족 대책위가 길을 열어줄것을 요청했지만 뭐 아무일도 없었다. 밑의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무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얼른 해산하라고 했다. 내 기억으로는 이곳에서 가장 먼저 캡사이신이 발포되었다.




 

설정

트랙백

댓글